이 영화가 너무 너무 기대된다.

12월에 개봉이라는데...

아무쪼록...

작품성도 흥행성도...

그리고 평가에서도 좋은 결과를 남기길...

 




 


 


유시민 전장관이 대선 출마에 대한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그가 어떤 행보를 할지 많은 이들이 주목을 했었는데...
자신을 뜻을 이렇게 밝히기는 처음인것 같다.

시민광장의 회원이면서도 그다지 활동이 없던터라...이 소식도 뒤늦게 들었다.

어찌되었든지...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의 유시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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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내 몸의 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던 때가 얼마지나지 않아...
반쪽을 잃어버린 김대중 대통령은 남은 반쪽 역시 하늘로 올라갔다.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 병원에서 이생을 마무리 하셨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후 꼭 87일 만의 일이다.

호남 정치의 아버지.
한국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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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이미지 검색>

탤런트 김민선이 광우병 발언으로 미국 쇠고기 수입업체로 부터 수억원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했다.
쇠고기 수입업체인 '에이미트'는 지난 10일 김민선과 MBC PD 수첩 제작진 5명과 김민선을 상대로 3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장을 10일 서울남부지법에 접수했단다. 
이번 소송사건의 김민선은 지난해 5월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 수입하느니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났다"라는 글을 올린것이 촉발된 것이다.

이에대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홈페이지에 '연예인의 한마디 사회적 책임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쇠고기 수입업자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한편 영화배우 정진영은 전여옥 의원의 글에 대한 반박글을 올려 연예인도 국민이며 한사람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임을 강조 하고 있다.

광우병, 미네르바, 노무현...그리고 김민선 소송.

이넘의 정권은 조용할 날이 없다.






"익숙한것은 감옥이다" [2005년 유시춘 선생님의 글]
글쓴이 : 블루세상
출처 :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 네트워크, 시민광장

동생 유시민을 말한다
386의 누나로서 말하노니 “익숙한 것은 곧 감옥이다”
유시춘 / 작가

4월은 잔인한 달인가.

전후의 초토를 ‘황무지’에 비유한 모더니스트 T.S Eliot의,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는 4월은 정녕 잔인하다.
‘인생은 빈 술잔, 주단을 깔지 않는 층계. 사월은 천치와도 같이 중얼거리며 온다’는 영국 여성 시인의 사월송이 다가든다.
봄의 ‘신생’을 찬탄하는 노래보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을 읊은 그것이 더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유명한 '春來不似春'도 그러하다.


이미 많은 독자께서 알고 계시다시피 필자는 유시민의 누나이다.

78년도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난 이후 줄곧 유시민은 나와 같이 살거나 내 근처에서 살았다. 92년 독일 유학을 떠나면서 그들 세 식구는 일산사는 나에게 주민등록을 올려놓았다. 그것이 2003년 고양시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의 계기가 되었다.
무명의 운동권 학생이 제도권에 데뷔한 단초가 되었을 ‘항소이유서’의 기억을 더듬으면 유시민과 나는 혈육으로는 오누이의 사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진한 동지애가 있었지 싶다.
85년 5월, 항소심 법정에서 만난 이돈명 변호사께서 내게 지나가는 말씀으로 ‘시민이 항소이유서 읽어봤소?’ 하시기에 이튿날 사무실로 가서 어눌하게 그걸 좀 보고싶다고 말씀드렸다. 줄 그어진 구식 편지지 30여장에 쓴 꽤 두툼한 분량이었다.
혼자서 다 읽어보니 명색 작가인 나로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글이었다. 26세의 청년이 영어된 처지에서 참고문헌 한 줄 없이 써내려간 글이라기엔 믿기지 않게 정돈된 구성의 미문이었다.
곰곰 생각하다가 나는 친지 몇 사람이라도 함께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그걸 들고 을지로 3가로 갔다. 골목에 촘촘히 박혀있는 청타인쇄소 한 곳으로 들어가 현장에서 급행으로 빼준다는 조건으로 급행료를 얹어주고 500부를 인쇄했다. 당시는 그것도 엮기에 따라서는 범죄로 구성될 법 했기에 나는 줄행랑을 치며 골목을 빠져나오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느라 그만 그 원본을 인쇄소에 두고 나왔다.
민추협 사무실, 법원 기자실, 서울대 총학생회 등 몇 곳에 갖다놓은 ‘항소이유서’는 그렇게 전국으로 삽시에 퍼졌다. 놀라지 마시라. 다음달 어느 아침에 눈을 떴더니 월간조선 광고문안에 그 항소이유서가 버젓이 떠있는 게 아닌가. 물론 군데군데 삭제한 글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조선‘은 그래도 민주화를 상품으로 팔아먹을 정도의 이성은 있었던 때였다.
그 직후에 나는 민가협의 모태가 된 ‘구속학생학부모협의회’ 결성을 주도하고, 사회 보고, 여러 대학교를 출몰하면서 대학생들을 선동한 죄로 재직하고 있던 고등학교에서 강제 해직을 당했다. 하기는 치안본부, 안기부 등에서 현직 교사인 나를 그때까지 두고 본 것이 오히려 자비로운 일이었다.


유시민으로 인해 가슴이 베어지는 아픔이 많이 있었다.

80년 5월 18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대를 덮친 시각 이후 온갖 흉흉한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누군가는 권총을 이마에 들이댄 군인에 의해 유시민이 끌려갔다고 했고 혹자는 이미 죽었다고도 했다. 생사를 모르고 지낸 그해 5월의 보름간은 정말 하늘과 땅이 맞붙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84년 복학 이후, 폭력과격 학생의 대명사처럼 되어 관제언론에 의해 난도질당할 때가 그랬다. 그렇게 온유한 성격의 천래적 페미니스트가 마치 악당처럼 매도당하는 데도 속수무책인 것이 서럽고 슬펐다.
하루 걸리는 먼 길인 마산교도소로 면회 가서 ‘금치’라는 교도소 측의 말만 듣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돌아서 나오던 날의 그 아득한 절망과 슬픔을 어찌 표현하겠는가.
이것이 또한 어찌 우리 오누이만의 설움이겠는가. 당시 군사정권에 저항한 숱한 양심들이 함께 겪은 고난의 행군이다. 그래도 말과 글을 다루는 우리 오누이는 행복하다.
우리 ‘민주화운동지혈사’는 그야말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묵묵하게 헌신한 이들의 선혈과, 꽂도 십자가도 없는 무명용사들의 희생으로 온전히 쓰여져야 한다.


목련이 처음으로 기린처럼 담위로 봉오리를 쏘옥 내민 사월 아침에 나는 가슴이 몹시 시리고 아프다.

우리당 전대가 끝났건만 그 후폭풍은 아직도 인터넷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유시민을 조직적으로 비난한 386 의원들의 행태를 두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 선거기간 중에 입은 상처가 덧나지 않을까 사뭇 염려스럽다. 이번 유시민 때리기에 가담했던 386 의원들을 생각하면 진정 마음이 쓰리고 저민다. 80년대 몇년 동안 나는 유시민의 누나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누나였다.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민가협 총무로서 수없이 캠퍼스의 담장을 몰래 월장했고 수배자들을 밀회하면서 연락책 노릇을 했으며 많은 날들을 교도소 정문을 마주하고 맨 바닥에 주저앉아 바람 실린 마른 빵을 뜯어먹었다.
그들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수만장의 유인물을 쓰고 제작하고 뿌렸다. 그들은 내 사랑이었고, 나아가 정녕코 우리 사회의 ‘희망의 거처’였다. 그들이 추구하는 대의는 의심 없이 불의한 권력에 항거하는 ‘정의’였으며, 그들의 갇힌 ‘부자유’는 우리들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볼모였다. 만인을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부자유는 나의 자유의 값을 반추하게 했다.
‘만인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때 나는 자유’ 임을 그들은 부자유함으로 증명했다. 단언컨대 우리의 민주주의와 역사는 이들 젊은 사자들에게 빚진 바 크다.
이제 그들의 대표성을 지니고 함께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이들이 과거에 군사독재가 애용하던 말을 살짝 바꾸어 그들의 선배에게 날렸다고 한다.
무엇 때문인가. 논객들의 지적과 분석이 있었으니 생략하기로 하자. 나의 아우를 향해 날린 독화살이 무척 가슴 아프지만 나는 아직도 386 의원들을 향한 내 사랑과 믿음을 쉬이 내려놓을 수 없다.


그들에게 내 진정을 전하고자 한다.

그대들은 87년 5월 23일 오후 2시를 기억할 것이다. 민통련이 광주항쟁 7주년을 기해 민주영령추모주간을 선포하고 그 집회를 종로 3가 탑골공원에서 개최하려던 시각이었다. 종로 3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행인들로 붐볐다.
2시 정각. 행인들 사이에서 호각이 울렸고 인파에 섞여 있던 학생들이 순식간에 도로 위로 쏟아졌다. 도로 위에서 구호소리가 퍼졌다. ‘종철이를 살려내라’. ‘호헌철폐 독재타도’.
삼천여명이 도로를 점령함과 동시에 함성은 더욱 우렁차게 이어졌다. 로마병정 차림의 전경들이 막아서면서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가장자리와 앞줄부터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광주출정가’가 터져나오면서 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옆사람과 팔깍지를 굳게 끼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서로 사슬처럼 팔을 굳세게 낀 채 도로 위에 드러누워서 연행에 저항했다.
86년 11월에 건대사건으로 운동의 주력부대 1,200여명이 모두 구속되는 대탄압이 있었던 터라 연행이 곧 구속을 의미했으므로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인간사슬을 끊어내려는 전경들이 방패로 학생들의 몸을 내려찍기 시작할 때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나섰다. 시민들은 전경을 제지하며 외쳤다. 학생들이 돌을 들었느냐. 화염병을 던졌느냐. 얘들은 맨 주먹인데 왜 먼저 때리느냐. 전경들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연행되려던 학생들은 더욱 팔을 단단히 조였다.
오, 그 때 잿빛 허공으로부터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비에 젖었다. 학생들을 빨갱이로 오인해 신고하던 시민들이 온전히 자기 편이 되어 지켜주는 감격 앞에서 그들은 울었다. 눈물은 흐르자 마자 빗물과 범벅이 되었다. 한번 흠뻑 젖은 육신들은 이후로 내내 그렇게 사슬을 만든 채 광주영령을 추모했다.
끝내 연행된 1,200여명은 그날 자정 이전에 모두 훈방되었다. 경찰은 화염병도 짱돌도 지니지 않았던 그들을 처리할 법률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이 날의 투쟁은 학생운동의 오래된 ‘화두’인 ‘대중노선’을 확인한 마침표였다. 전두환 정권 내내 학생들은 선도투쟁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고립무원의 싸움에는 언제나 선혈이 뚝뚝 흘렀다.

그러다가 5.3 인천사태와 ‘애학투’의 건대항쟁이 무참히 유린당하는 것을 기화로 ‘대중노선’을 절박하게 고민한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독재타도를 위한 동력임을 5월 23일의 가두투쟁은 돈오돈수케 한 것이었다.
며칠 후 5월 27일. 마침내 반독재연합체인 ‘국민운동본부’가 창립되고 단일대오로 뭉친 전대협은 전두환과의 일전에 불퇴전의 결의를 다지게 된다.
물고기가 물에서 놀 듯이 민주화운동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만이 절대적 환경임을 터득했다.
그날 5월 23일 가두투쟁의 현장과 이후 6월항쟁을 내리달렸을 386 의원들은 아마도 이번에 유시민을 향해 돌아보지 아니하고 철없이 내뱉는 ‘한 사람의 열 걸음’을 질타한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실제로 그들 중에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주문하기도 했다.


나는 집단 공격당한 유시민의 누나로서가 아니라 아직도 내 사랑인 386 의원들의 누나로서 말한다.
 
역사의 장강은 부단히 뒷 물결이 앞 물결을 치고 흐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독재시대의 선도투쟁과 대중노선은 이제 흘러간 지난 역사가 되었다.
노무현의 사람들과 참여정부의 작은 티끌까지 찾아내어 물어뜯고 있는 거대언론, 그 하이에나의 무한자유를 보라. 언론자유에 관한 한 87년 그 때와 지금은 석기시대와 산업사회의 거리만큼 아득하다.
그런데 그대들의 레토릭은 여전히 전대협 의장 시절, 고난보다 영광이 더욱 빛나던 시절에 묶여있지나 않은지.
그리고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비단옷은 자칫 영혼을 녹슬게 한다는 선인의 경구를 새기라.
80년대 한때 청년정신의 정화를 남김없이 분출했던 김민석이 어떻게 권력과 유착하면서 허물어졌던지를.

김민석은 서울시장 출마를 앞두고 어느 언론사와의 긴 인터뷰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의원으로 ‘정균환’을 자랑했다. 그는 그때 정균환 등과 밀실에서 늘 어울렸으며 민주당 쇄신을 요구하는 정동영을 공격했다.
정균환은 그런 김민석의 발언을 참 생뚱맞게끔 링컨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에 비유했다.


허무하고 또 허무하지 않느냐.

권력은 그렇게 ‘눈 위에 새긴 발자국’과 같은 것이다. 386 그대들이 추구한 꿈은 권력이 아니라 ‘민족의 자주, 사회의 민주화’였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취된 지금은 민주주의의 컨텐츠를 새롭게 구축하는 과제가 절대절명으로 놓여있다. 지금은 ‘한 사람의 열 걸음’도, ‘열 사람의 한 걸음’도 아닌, 바로 ‘열 사람의 열 걸음’이 요구되는 때이다.
소주 한 잔 하면서 형님 아우하며 인맥과 온정으로 권커니 잣커니 하는 짓은 가당치 않은 짓이다. 그런 적당주의 보신주의는 386의 코드가 아니다.
80년대 그때처럼 진정과 열의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가 무엇이며 386이라는 가치지향적 개념이 그대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자문한다면 명석한 그대들은 얼마든지 답을 찾을 수 있다.
혹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미 그대들에게 익숙해진 것이 있다면 그것과 결별하라.
익숙한 것, 그것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감옥이다.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을 선출하기 위해 열렸던 2005년 '4.2 전당대회', 유시민 후보는 선거기간 내내 당 내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비토와 공격에 시달렸고 결국 4위의 성적으로 상임중앙위원에 당선됩니다.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인 2005년 4월 9일, 유시춘님이 데일리서프라이즈에 기고한 글입니다. 편집자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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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유시민이 좋은 사람 같다.
그래서 인가...?
내 마음이 움직인다.
그리고...
유시민이 좋다.

음...
나도 호모는 아닌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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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17일이 지났다.
그 동안 온 나라가 떠들썩 했고 추모 열기와 더블어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 공방이 오갔다.

유래 없는 추모 열기는 노 전 대통령을 예전 부터 아꼈던 사람들 마저 놀라게 했고...
그러는 중에도 그의 서거에 대해 비꼬는 듯한 말을 남겨 사람들로 하여금 공격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서거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큰 힘이 실렸었다.
그것을 주장하는 이들은 거대 언론사의 왜곡과 대적자들의 폄하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이 국민들에게 축소 혹은 잘못 전달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전혀 빈말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나 경제적인 업적만을 크게 보는 우리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작업이 아주 쉬웠을 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보다도...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하나 만으로도 그는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비주류였다.
변호사 시절에도 국회의원 시절에도...
큰 세력의 무리에 들어있지 않고 항상 소수와 약자들 사이에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그러한 삶을 선택했고 끝까지 그것을 굽히지 않았다.

유시민 전 장관과의 만남에 있어서의 에피소드를 들어 보면...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싸워온 386세대 정치인들에게 조차 노 전 대통령은 따돌림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
노 전 대통령은 고졸 출신이기 때문이다.
386의 정치인들은 대학에서 이념 운동을 하며 학생 회장도 하고 임원도 하고...
말그대로 이념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스스로 엘리트라는 오만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 고졸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습게 보였을 것이고...

유시민 전 장관은 노무현이 대단한 인물이고 충분히 진보세력의 대표가 될만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배척당하는 것이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대 출신 중에 그래도 잘났다는 소리 듣는 사람 중에 하나인 자신이 노 전 대통령을 지지 하겠다고 맘을 먹었다고 한다.
내가 글로써 잘 표현을 못하고 있지만...
그의(유시민 전 장관) 인터뷰는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에서 비주류의 사람이...
경제적으로나 권력적으로나 학벌적으로나...
절대적인 비주류의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건...
넬슨 만델라가 흑인으로 최초의 남아공 대통령이 된 것이나 버락 오바마가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것 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재임기간 어찌했던지 간에(물론...그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다시 재계되어져야 한다) 끝까지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했고 그들의 힘을 빌어 대통령이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많은 이들이 그를 가볍다고 말들을 했었다.
대통령으로써의 권위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알게된다.
우리는...
권위가 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아니...모르는게 낫지...잘못알고 있었다.
그 동안의 대통령들의 모습에 의해 알게 모르게 잘못 길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부터 아래로 누르는...
무게 잡고 거드름 피우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모두가 벌벌떠는...
이런 걸...권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라고?
아닌게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져 있었다.

당쵀 소통이 되지 않는 현실을 맞닥드리고 나서야...
노 전 대통령이 무엇을 노력하려 했는 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대화 하려고 했다.
그는 토론 하려고 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대통령이 어렵고 무서워서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했다.
누구나가 대통령을 욕할 수 있었고...
누구나가 그를 대통령 감이 아니라고 비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본적인 자유인지를...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이제와서...
말이 통하지 않고...
작은 말에도 발끈하고...
뭐든지 힘으로 밀어부치는 사태를 맞이하고서야...
우리는 대통령의 참 권위를 다시 한 번더 생각하게 되었다.

대통령이 왕인가?
나는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한다.
지금은 왕정시대가 아니다.
왕이 백성을 다스렸다면 대통령은 국민을 섬겨야 한다.
그렇게 하라고 세금으로 월급주고 있고 여러가지 권리를 준 것이다.
제발...왕으로 착각하지 말라.
입으로는 머슴이라면서...왜 자꾸 주인 행세를 하는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지금의 대통령을 지지 했던 이들 마저 자신의 표행사를 후회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기업 회장 출신의 후보 말에 현혹되어 그만 실수를 했다.
너무나 경제가 어려웠으니깐...
경제가 살면 편안할 것이라고 믿었으니깐...
그렇게 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이제 후회한다고 변하지 않는다.
대신...
절대 잊지 말았으면 한다.
경제보다도 중요한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지 않는가.
지금의 현실을 기억하기를 잊지 말기를...
그래서 다음 번에 또 다시 실수하는 일이 없기를...

노무현과 같은 이가 이 나라에서 또 나올 수 있을까?
주류에 속하지 않고는 절대로 될 수없는...
언제나, 항상, 무조건 되는 넘만 되는 이나라에서...
언제 다시 비주류의 대통령이 나올까?
..............................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제2의 노무현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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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 첨맘
출처 :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 네트워크, 시민광장

유시민입니다.
자원봉사 하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봉하마을 빈소도 그렇지만
서울역 분향소와 수원 연화장에서 봉사하신 분들께 특별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악물고 현실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새로 가입한 회원이 무척 많은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닉이 자주 보이는 걸 보면...
반갑고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수고하시는 모습
대통령님이 하늘에서 다 보셨을 겁니다.
당신으로 인해 행복했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도
새삼 아셨을 것이구요.
시민광장 회원 여러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무현 대통령님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글을 여기에 올립니다.
서울역 분향소에서 두 번 썼고 이번이 세번째인데...
더는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께 더 드릴 말씀이 없고
또 그분의 떠나가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님을 보내며
- 유시민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님
활짝 웃으며 내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 자리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돋았답니다.

나는 거기에 속삭여요.
님은 씩씩하게 살았고
그리고 멋지게 떠나셨지요.
나는 님 덕분에 아주 행복하고
님에게 무척 미안하지만
더는
님 때문에 울지 않을 거예요.

님을 왜 사랑했는지 이젠 말할 필요가 없어서
님을 오래 사랑했던 나는 행복해요.
님을 아프게 했던 정치인이 상주 자리를 지키고
님을 재앙이라 저주했던 언론인이 님의 부활을 축원하니
님을 깊이 사랑했던 나는 행복하지요.
님이 떠나고 나서야 님을 발견한 이들이 슬피 울어주니
님의 죽음까지도 사랑하는 나는 행복하답니다.

노트북 자판을 가만가만 눌러 작별의 글을 적었던
그 마지막 시간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해서 미안해요.
살 저미는 고통을 준 자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할 수 없어 분하구요.
나란히 한 시대를 걷는 행운을 누리고도
고맙다는 말 못한 게 마음에 걸리지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니
이젠 님을 보내드려야 하네요.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편안히 가십시오
내 마음 깊은 곳으로.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돋아난 그곳에는
봄마다 진달래 붉게 터지고
새가 울고
아이들이 웃고
청년들이 노래하고
수줍은 님의 미소도 피어나겠지요.
그 흐드러진 꽃무덤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행여 잠결에서도 절대
잊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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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민광장' http://usimin.co.kr/>


MyName!!, All Right Reserved


음...
조카를 데리고 서울역 광장 분향소를 다녀왔다.
주초부터 맘을 먹어었는데...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서야 다녀올 수 있었다.

서울역 광장...
거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웃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많이도 힘들었을 텐데...


MyName!!,
All Right Reserved


MyName!!, All Right Reserved

많은 사람들이 벌써 다녀갔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었고...
빼곡히 자리를 차지한 노란 리본에는 고인을 애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표현되어져 있었다.
그 글 하나하나가 참 마음을 뭉클케 한다.


MyName!!,
All Right Reserved


유시민 전 장관이 눈에 보였다.
굉장히 피곤한 모습이었는데...
간간히 다른 분들과 교대를 하며 계속해서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시민 장관을 멀리서나마 직접 본것은 처음이다.
장례기간동안 힘들어서 그런지...TV에서 볼 때보다 더 마르게 느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시민 전 장관에게 '당신은 정치하지 말아라...'라고 하셨다는데...
그래도...앞으로 유시민 전 장관이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MyName!!, All Right Reserved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도 보였다.

역시 초최한 모습...
여성 정치인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와 지지를 보내는 분이다.
그녀가 시장 선거에서 낙선을 하고 마지막에 불렀던 노래처럼...
다시 돌아와 좋은 모습으로 국민들과 함께 하시기를...


MyName!!, All Right Reserved


MyName!!,
All Right Reserved

영화배우 문성근씨와 영화감독 이창동씨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사람 다 노 전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부터 함께했던 사람들.
선거때 얼굴 내비치고는 작은 인연으로 문화부 장관까지 하는 누구하고는 확실히 다른사람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리워하는 수 많은 사람들...
그분의 영상을 바라보며 웃기도하고...눈시울을 적시기도하고...진지한 표정을 짓기도하고...안타까와하기도 하고...
.....................

집에 돌아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저 바라는 마음...
개인이든지...단체이던지...
가슴 아픈 비극은...더 이상 일어나지 말기를...

내일이 영결식인데...
오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겠지...

남은 유가족들...
하루 빨리 마음에 평안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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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에서 블러그를 운영중이신 '빈꿈'이란 분의 작품이다.
저작자의 닉네임 밖에 몰라서...ㅡㅡ;;

너무 많은 의혹으로 마음이 무겁고 어두운데...
조금은 냉정을 찾고 생각 할 수 있을 것 같다.

음...
그래도 맘은 슬프다.


아래 글은 제 글이 아닙니다.
펌 글입니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분의 서거 사건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의문은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아래 글은 응급실에서 일한다는 어떤 네티즌이 올린 의문의 글이며 사실로 밝혀진 것이 아닙니다.

================================================================================================

저는 모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입니다. 이번 노통 서거 사건에 관련되어 여러가지 의문사항이 있습니다..


아침 기상 시점부터 시작해서 추락할 때까지의 여러 의문점들도 다 풀린 것은 아니나 일단은 노통의 신체에 손상이 가해져서 의학적인 처치가 필요하게 된 이후의 상황들에 대해서만 글을 써보렵니다.


참고로 가장 최근에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하겠습니다.
(사실을 가지고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가지고 기술하는 것입니다. 다만 언론에 의하지 않은 개별네티즌의 글이나 댓글들에 보이는 내용은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개별네티즌의 의견은 하단에 덧글에 대한 해석을 추가로 붙임)



오전 6시 40분 ~ 오전 7시 (부엉이바위에서 추락이후 세영병원 이송 전)


노통이 부엉이바위에서 추락한 이후 산위에 있던 경호원은 20분만에 산을 내려와 쓰러져 있는 노통을 찾은 후 환자를 들쳐업고 인근의 세영병원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양산부산대병원장의 발표를 보면 두정부의 11cm 정도의 열상이 관찰되었으며 두개골의 골절과 기뇌증이 확인되었는데 두부의 외상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간략하게 머리쪽은 해부학적으로 바깥쪽에서부터 시작해서 두피, 두개골, 경막, 지주막하 공간, 뇌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 의학적 관점에서 '두정부의 11cm 정도의 열상'과 '두개골의 골절 및 기뇌증이 확인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자.
두정부는 머리의 정수리 부근을 의미한다. '열상'이란 피부가 찟어져서 생긴 상처를 의미하고 기뇌증이랑 두개골 안의 공간에 공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어의 의미와 발표문에서 나온 환자의 상태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두부의 두정부 부위로 엄청난 외력이 작용하면서 두피를 파열시키고 두개골을 골절시킨다.
두개골 골절이 발생하면서 찟어진 피부를 통해 외부의 공기가 그 틈을 통해 두개골 안으로 들어간다.(기뇌증의 발생)
그런데 두개골 골절이 있다고 모두 기뇌증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기뇌증이 발생하려면 경막이 뚫려야 하고 경막이 뚫리면 지주막하공간이 손상을 받는다.(두개골 골절이 생기더라도 경막이 뚫리지 않으면 경막외출혈이 되고 이 경우 기뇌증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면 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하게 되는데 외상에 의한 두개골 골절이 동반된 지주막하출혈은 엄청난 양의 출혈을 야기한다.
영화에서 보셨을거다.
등장인물들이 땅에 떨어지거나 서로 싸우다가 땅에 머리 부딪힌 경우 땅에 쓰러진 등장인물의 머리 뒤로 서서히 피가 흘러나와 동심원이 커지는 모양으로 땅을 적시는 모습을...


결론은... 추락한 부위의 혈흔을 찾을 수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
또한 그런 상황에 처한 환자를 들쳐업고 뛰었다?
머리에 피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무의식적으로 지혈부터 하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뭐 물론 지혈을 하려고 노력해도 지혈은 잘 안된다.
저정도 출혈이면.. 양손으로 눌러막아도 지혈은 안된다.
어쨌거나 그 상황에 진짜로 일단 데리고 내려가자는 생각에 들쳐업고 뛰었다면 그 경호원은 온몸에 피칠갑을 했을거다.



밝혀야 할 문제점1
노통이 추락한 지점을 찾아야 한다. 혈흔이 없을 수 없다.!!
혈흔이 없다면 그건 노통이 추락사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밝혀야 할 문제점2

당시 경호원이 착용했던 의복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피칠갑된 의복의 상태를 보면 경호원이 어떤 방식으로 노통을 옮겼는지 알 수 있다.
경호원의 의복은 어디 있나?
설마 빨아버린 건 아니겠지??


밝혀야 할 문제점3

의식 잃은 대통령을 들쳐업고 내려와 경호차량으로 세영병원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당시 경호차량은 어떤 차였고 탑승했던 사람은 전부 몇명이었나?
차량 내 좌석은 어떤 식으로 배정되었고 노통은 어떤 좌석에 어떤 자세로 태워졌나?

-> 차량탑승자에 대한 개별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차량 내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차량에서 분명히 혈흔과 함께 추락지점의 흙이나 나무조각, 풀 등이 나와야 한다. 현재 경찰은 목격사 조사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서둘러 자살로 결론후 내일 모레면 화장 일입니다.



오전 7시 ~ 오전 7시 35분 (세영병원)


내 생각으론 노통은 양산부산대병원 도착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거나 혹은 세영병원에서 사망하였을 것이다.

오전 7시경에 세영병원에 도착한 노통은 거기서 심폐소생술을 시행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없어 상급병원인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한다.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정지한 환자의 소생을 위해 시행되는 술식이다.
여기서 환자의 소생이란 사실 환자 심장의 소생이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였으나 호전될 기미가 없다는 말은 멈춰버린 심장이 아예 안 돌아왔거나, 심폐소생술로 인해 심장박동이 되살아 났다라도 금방 다시 멈춰버렸음을 의미한다.
이 상황은...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손을 더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상급병원으로의 이송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번째 세영병원에서 사망하고 나서 의전상 대형병원으로 옮겼을 가능성,
두번째 이송하다가 사망한다는 것을 100% 확신하면서도 의전상 대형병원으로 옮겼을 가능성이다.
어쨌거나 세영병원에서는 노통이 곧 사망할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의사입장에서..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없어 타병원으로 이송하였는데 그 상태라고 하는 것이 거의 심폐소생술에 반응을 하지 않는 심장사에 준하는 상태였다면.. 그건 의사 자신이 환자의 사망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 역시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로서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세영병원에서의 가상기록1

응급실로 노통 내원 -> 즉시 환자 상태 확인 및 당직의사 콜 -> 바이탈싸인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상태였다면 바이탈 유지하면서 즉시 뇌CT 및 X-ray 촬영 시행 -> 뇌CT상 심한 두부손상 관찰되어 상급병원 전원 필요하나 환자 상태 점차 나빠짐 -> 심장기능 정지하여 즉시 심폐소생술 실시 -> 지속적인 심폐소생술 시행에도 환자 상태 호전 없음 -> 이후 환자는 세영병원에서 사망하거나 혹은 사망가능성 경고하고 상급병원 전원. 이송도중 사망가능성이 아주 높으나 세병병원에서는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음.


세영병원에서의 가상기록2

응급실로 노통 내원 -> 즉시 환자 상태 확인 및 당직의사 콜 -> 바이탈싸인 좋지 않아 즉시 심폐소생술 실시 -> 심폐소생술 시행에도 불구하고 심장기능 정지 상태를 유지 혹은 잠깐씩 심장박동 돌아왔다가 얼마 안가 심장기능 정지 상태로 회귀 -> 이후 환자는 세병병원에서 사망하거나 혹은 사망가능성 경고하고 상급병원 전원.


내 생각엔 '가상기록1'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
이유는
노통이 입은 환자복 및 세영병원에서 시행한 X-ray 기록 때문이다.
언론보도를 보면 양산부산대병원 내원시 노통은 세영병원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한다.
응급실로 이송되어 온 그 상황에 환자 상태가 좋지 않다면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다.
또한 3차 진술에서 의사는 노통에게 두부외상 외에 척추 및 오른발목 골절 등이 있었다고 한다.
두부외상과 골절 여부를 알았다는 것은 CT와 X-ray를 촬영할만큼의 생체징후는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세영병원 의사는 인터뷰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었고 호전기미가 보이지 않을만큼 상태가 위독했었므로 상황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언론보도로 재구성해 본 당시 세영병원에서의 상황

내원 당시 노통은 심각한 외상에도 불구하고 바이탈싸인은 유지되는 상태였으며, 두부외상을 제외하고 신체 다른 곳의 외상 여부를 알기 위해 노통의 의복을 잘라내고 수액라인을 확보하고 기타 필요한 처치 후 뇌CT 및 X-ray 촬영을 갔을 것이다.(세영병원의 CT가 몇채널짜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통상 CT 찍는데 시간은 5분 정도면 되고 X-ray도 금방 찍는다.)
이후 환자 상태가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심장기능이 정지해 버렸다.
즉각적인 심폐소생술이 시행되었으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의사는 신경외과적인 처치를 위한 상급병원으로의 이송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송할 수 있을 정도로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
이송 도중 사망할 가능성이 거의 99%이다. 하지만 환자 보호자(경호팀)들은 상급병원으로의 이송을 강력히 요구한다.
의사는 이송 도중의 사망가능성을 경고하고 이송을 지시한다.



밝혀야할 문제점1
세영병원에서 시행한 의료적인 처치는 무엇인가?

-> 의료기록 및 검사내역에 관해 전부 공개해야 한다. 그러면 세영병원 내원 당시의 환자 상태를 알 수 있다.


밝혀야 할 문제점2

노통이 당시 착용한 의복은 어디 있는가?

-> 언론보도에 의하면 노통의 외투가 사고현장에서 발견되었다. 경호원이 추락한 노통의 외투를 벗기고 병원으로 이송을 했다고 진술했다는데...
외상환자의 의복을 함부로 탈의하고 심지어 업고 가는 건 다른 네티즌들이 많이 지적을 했으니 넘어가고..
난 세영병원으로 노통이 이송되어 올 당시 어떤 의복을 착용한 상태였는지가 궁금하다.
노통 추락사에 대한 의혹 중에 '피 묻은 노통의 외투가 발견된 지점에 혈흔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고 이후 누군가가 외투를 가져다 놓은 것이다'라는 것이 있다.
이 의혹은 세영병원 내원 당시 노통의 의복 상태를 알면 바로 해결될 의혹이다.
또한 의복의 피묻은 상태로 노통의 외상여부를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더.. 병원에 내원한 외상환자의 의복은 응급실에서 벗겨내는 것이 아니다.
가위로 의복을 전부 잘라서 제거한다. 외상환자는 함부로 몸을 움직여서는 안되므로...


밝혀야 할 문제점3

이송시에 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헬기를 동원하여 이동하지 않았는가? 또한 양산부산대병원으로의 이송을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 전직대통령급의 VIP에 저 정도의 응급상황이면 당연히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으로 가장 빠른 이송수단을 이용해서 가야한다. 신경외과가 있는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은 마산삼성병원이었다. (세영병원-마산삼성병원 16km, 세영병원-양산부산대병원 52km)
아무리 환자가 사망에 준한 상황이라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는 경우 신경외과가 있는 대형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가는 것이 필요하다.
양산부산대병원이 마산삼성병원보다 더 좋은 병원이라서 그 쪽으로 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 중요한 것은 빨리 신경외과적인 처치를 시행하는 것이므로 양산부산대병원으로의 이송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또한 양산부산대병원으로의 이송을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경호팀인가.
통상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전원할 때 어느 병원으로 이송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의사이다.
왜냐하면 이송할 병원에서 그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를 먼저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송할 환자가 생기면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상급병원에 먼저 전화해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보내도 되는지 여부를 물어본다.
그래서 보내도 된다는 허락을 맡으면 그 때 환자를 보낸다.
당시 노통을 담당했던 의사는 누가 이송을 결정했는지, 자신이 양산부산대병원으로의 이송을 지시했으면 왜 그렇게 지시한 것인지에 대해 공개해야 한다.

또한 전직대통령의 응급상황에 왠 자동차??? 헬기 불렀어야 한다.(의료장비가 탑재된 구급차량이 더 낫지 않으냐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당시 상황에서 필요한 장비는 휴대용 산소통, 심실제세동기, 환자상태 감시할 감시모니터, 수액 및 기타 의약품, 그리고 동승할 의료진이 전부다. 헬기에 다 실을 수 있다.)


밝혀야 할 문제점4

두부의 상처는 어떤 상태였는가? 그리고 신체 내 다른 부위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 두부손상에 있어서 두부에 작용한 외력은 그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흔적을 남긴다.
예를 들어 기다란 작대기에 맞은 상처와 망치로 맞은 상처는 모양이 다르다.
추락시에 바위에 부딪힌 상처와 땅바닥에 부딪힌 상처는 모양이 다르다.
노통은 부엉이바위에서 추락사하였는데 부엉이바위는 경사가 70도라고 한다.
경사 70도의 바위라면 멀리서 도움닫기를 하고 뛰지 않는 이상 떨어지다가 바위에 몸이 부딪힌다.
당연히 낙하도중 바위에 부딪히고 나서 튕기고 다시 다른 바위에 부딪히고 구르고를 반복하다가 산의 흙바닥에 떨어진다.
바위에 부딪히면서 두부손상이 발생하였으면 두부열상의 가장자리가 단단한 바위에 부딪히면서 으깨질 것이고 상처의 표면에 주로 흙이 묻어있거나 할 것이다.
바닥으로 직접 추락한 경우는 두부열상 깊숙히 흙이나 풀 등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말하자면 직접사인으로 지목되는 두부외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또한 신체내 다른 외상의 정도를 알아야 한다. 당연히 온몸은 긁힌 상처로 가득해야 하고 팔다리의 일부분은 거의 꺽이거나 적어도 깊은 열상 정도는 있어야 한다.


밝혀야할 문제점5
응급실 CCTV를 공개하라.

->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응급실에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 이를테면  응급실에서의 난동, 환자 사망시의 책임여부공방 등에 대한 증거수집을 위해 CCTV를 가동하게 된다. 노통 내원 당시의 CCTV를 공개해서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밝혀야할 문제점6
권양숙 여사는 노통의 상태를 언제 처음 보고받았나? 왜 세영병원으로 직접 오지 않았나?

-> 권양숙 여사는 9시 30경이 되어서야 양산부산대병원에 도착했다는데...
도대체 오전 6시 40분 사고 이후 세영병원으로 노통이 이송될 때까지 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인가? 혹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인가?


밝혀야할 문제점7
세영병원 내원 당시 현재 세영병원 내과과장말고 다른 당직의사가 있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먼저 노통의 상태를 살펴본 의사로서 그 사람의 진술이 꼭 필요하다.




오전 7시 35분 ~ 오전 8시 13분 (이송중)


차량을 통한 양상부산대병원으로의 이송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밝혀야할 문제점1
이송 중의 노통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 당시 동승한 의료진은 이송시의 의료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오전 8시 13분 ~ 오전 9시 30분 (양산부산대병원)


언론보도에 의하면 노통이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로 내원하였을 때 다들 DOA(death on arrival)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사망한 채로 실려왔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응급실 의사들은 어쨌거나 소생술을 시행한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위해... 하지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도 반응이 없어서 9시 30분 경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사망시각을 의사가 사망선고를 한 시간으로 잡는다.
그래서 외부에서 실려온 환자의 상태가 DOA라 하더라도 심폐소생술을 끝내는 그 시점을 사망시간으로 잡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는 것 자체가 환자의 사망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에 보도된 사망시간은 그래서 오전 9시 30분이다.
오전 9시 30분에 양산부산대병원의 어떤 의사가.. 노통에게 사망선고를 내렸을 것이다....



결론.

1. 증거를 토대로 결론을 내리십시오.
사건의 중대성에 비해 도무지 증거가 없습니다!!!!
수사당국은 증거부터 수집하십시오.
길가에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까지 수집해야 합니다!
현재증거는 컴퓨터 파일 하나뿐입니다



2. 노통의 시신은 부검해야 합니다.
전신의 상태에 관한 정확하고도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합니다.


3. 사고현장감식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현장에 대한 증거 없이 자살로 결론내리면 안됩니다.
모든 증거를 총괄하여 자살이라는 결론이 도출되기 전까지 노통의 죽음은 의문사입니다.



4. 사건관련자들은 모두 다 재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이 번복되는 상황입니다.


5. 상기 2,3,4에서 나온 자료들을 토대로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야 합니다.
몇 시에 어디서 어떤 자세로 어떤 바위들에 충격 후 추락했는지까지 모든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의혹을 제기하는 주체들이 납득할 수 있는 누군가가 수사 전체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사를 맡은 경남지방경찰청은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하려 했습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진실을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 평안하시길 빕니다.


p.s.) 어제 저녁 뉴스를 보니 인근의 회사원이 등산 도중 경호원을 만났었다고 하더군요. 그 회사원에게 노통을 경호한 사람의 사진을 보여 주고 그 때 만난 경호원이 그 사진 속의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게 하십시오. 만약에 두 인물이 다르다면 그 날 산속에는 노통과 경호원 두 사람말고 또 다른 제3의 인물이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 글은 마음대로 퍼가셔도 됩니다.




덧글1>

언론에서 노통 사고 당시의 혈흔을 공개했네요. 가소롭습니다.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외상성지주막하출혈을 야기할 정도의 두개골 골절 및
11cm 두피열상이면 적어도 수도꼭지를 쫄쫄쫄 들어놓은 듯한 출혈이 발생합니다.
저 사진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저 혈흔 주위로 대량의 혈흔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2. 두피손상은 떨어지는 도중 언덕 중턱 바위에 부딪히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낙하예상경로 주위로 흩뿌려진 여러 개의 혈흔들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3. 혈흔의 모양이 원형이고 주위로 튄 듯한 양상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을 보아 혈액이 튄 방향은 바위면에서 봤을 때 수직 90도 방향이며 바위면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높이에서 혈액이 떨어졌을 것이다.

4. 혈액을 채취해서 DNA 감식을 의뢰하여 혈액의 주인이 노통인지를 알 수 있다.

5. 서거 다음날 봉하마을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는데 어떻게 저 혈흔은 그대로 있지??????? 조작입니다.


덧글2> 혈흔 관련해서 추가사항

1. 제가 위에서 말한 바위면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높이라 함은 말 그대로 몇십센티미터 높이입니다.
혈액은 구성성분 중 40% 정도가 적혈구 등의 고체성분입니다.
물보다 점성이 좀 있는 편이죠. 그래서 바닥에 떨어져서 튀는 피가 다시 주위로 튈 때는 좁은 반경 내에 대부분 있게 됩니다. 
응급실에서 외상환자들 받아볼 때 경험으로 볼 때 혈액 한 방울이 30센티미터 위에서만 떨어져도 좁은 반경을 가진 피 튄 자국이 나타나게 됩니다.
공개된 혈흔은 꼭 바위 바로 위에서 살며시 떨어뜨린 것 같더군요.
마치 그 혈액을 떨어뜨린 사람이 자기 몸에 그 피가 튈까봐 걱정하면서 떨어뜨린 것처럼....


덧글3> 세영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것은 맞는가?

1. 상기 질문에 대해 저는 일단은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을 걸로 생각합니다.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로 노통이 내원할 때 기도삽관(intubation, 자발호흡이 없는 사람에서 저환기 및 저산소증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기도에 관을 집어넣고 강제로 호흡을 시키는 것)을 하지 않았다는 글을 저도 다른 네티즌이 쓴 글을 읽고 알긴 했는데 언론사 보도로 확인한 내용이 아니라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응급실에서 이루어지는 심폐소생술의 경우 기도삽관 상태에서 시행하는 것이 정석이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죠.
예를 들어 의사가 기도삽관에 실패하거나, 경추손상 가능성으로 통상적인 기도삽관이 불가능한데 코를 통한 기도삽관을 할만한 장비가 없거나 등...그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에 따라 심폐소생술 시행 여부는 논란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관련 의무기록 및 CCTV 공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덧글3-1> 기도삽관에 대해 부가 설명

1. 통상 환자 이송시 특히나 중환을 이송할 때는 기도삽관을 반드시 하고 가는 것이 정석입니다.
왜냐하면 이송중에 어떤 이유에서건 호흡곤란이 발생하면 구급차 안에서는 대처 자체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떤 분께서 지적하셨듯이 정말로 기도삽관 없이 자가호흡이 없는 심한 두부외상 환자를 52km 거리의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은... 제 짧은 식견으로 비추어 봐서는 거의 환자의 소생가능성을 0%로 잡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화장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30대인 제가 죽는 그 순간까지 묻혀버릴지도 모를일입니다.

 

사실 처음 노무현 前대통령의 자살특보가 떴을때부터,

타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암흑기였던 과거와 다르게 현대의 집단지성들이 눈을 부릎뜨고 있는데,

정부의 이런 말도 안되는 처사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던 저조차도 분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네요.

모든걸 다시 수사해야합니다.

가시는 그 분, 아니 이미 떠나버린 그 분을 위해서,

그 분의 honor를 위해서, 아니 truth를 위해서..

==========================================================================

여기까지가 제가 펌한 글 입니다.
처음부터 좀 제대로 조사를 했었다면...
이런 일이 없어겠죠...




위 로고는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내가 '다른 이름으로 사진저장(S)...' 해 온거다.
물론 파일 이름을 임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저장했다.

근데...
이 파일 이름이...'chosun_logo_090522'이다.
그럼...이거 만든 날 2009년 5월 22일 이란 말 아닌가??
노 전 대통령 서거일이 5월 23일인데...
이게 말이되나???

이거 정말...어떻게 된건가??


위 사진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근조로고의 속성 보기를 하였고 그것을 캡쳐한 것이다.
밑에 '만든 날짜'라고 되어있는 것은 실제 파일을 만든 날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저 '이미지를 보는 순간에 케시에 저장되는 날짜'란다.

근조 로고를 만든 사람이 파일명을 잘못입력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파일 이름으로 보아 조선일보에서 쓰는 포토샵이나 기타 일러스트러 프로그램에서 날짜별로 자동으로 저장되어 지게 설정을 한듯한데...

한나라의 전 대통령이 자살을 한 초유의 사건이다...
그것도 본인(노 전 대통령) 스스로 많이 억울해 하는 일로 검찰 수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최대한 의문이 없도록 수사를 해야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생각된다.

제발...그렇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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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도 노무현이지만...
유시민...정말 대단하다...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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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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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24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헌화를 한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슬퍼하고 있다.
ⓒ 유성호
강금실

두 사람은 오열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서로 어깨를 붙들고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모든 '노무현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앞에 두고 통곡했지만, 두 사람의 슬픔은 남달랐다.

 

한 명은 검사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또 한 명은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내 인사들의 반발까지 무릅쓰고, 장관을 시켜서 자신의 옆에 두고 싶을 만큼 노 전 대통령이 아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참여정부 내내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하는 '상징'이었다.

 

강금실 "도대체 무어라 해야 할 지"

 

강금실 전 장관은 24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올려놓고, 향까지 피운 강 전 장관은 더 어찌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의 손에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고 준비한 흰색 손수건이 꼭 쥐어져 있었고, 그의 표정은 한 없이 침통했다.

 

  
강금실 전 장관이 24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지난 2003년 2월 강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에 의해 대한민국 첫 여성 법무부장관이 됐다. 게다가 젊고, 개혁적이었다. 그래서 그를 발탁한 노 전 대통령의 파격적인 인사는 곧바로 일선 검사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승부사 노무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평검사와의 대화'라는 전무후무한 형식의 TV토론을 열어 검사들의 반발에 정면으로 맞섰다.

 

강 전 장관은 조문을 오기 직전,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그는 미니 홈피 메인 화면에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문구를 올려놓고, 메인 사진도 최근 일본 오사카에 있는 시덴노지(四天王寺)를 방문, 일제 강점기 전장에 끌려가 희생된 조선인을 위한 위령제에 참석했던 사진으로 교체했다. 사진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도대체 무어라 해야 할지… 지금으로선 막막합니다. 지금 그냥 슬퍼하고… 가신 분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지금은…"

 

그의 안타까운 '기도'는 그렇게 끝을 맺지 못했다.

 

유시민 "마지막 가는 길에 담배를 올려야겠다"

 

조문을 마치고 나서는 강 전 장관과 유시민 전 장관이 마주섰다. 유 전 장관은 강 전 장관을 붙들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유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3일 봉하마을로 내려와 현재까지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앞서 유 전 장관은 전날(23일) 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문을 앞두고 "마지막 가는 길에 담배, 이 담배를 올려 드려야겠다"고 말했다. 실제 유 전 장관은 헌화를 마치고,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촛불로 불을 붙인 뒤,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올려놨다.

 

유 전 장관은 지난 2006년 2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싸움닭' 이미지 때문에 한나라당은 물론 당내에서조차 반발이 거셌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의 임명을 밀어부쳤다. 그 역시 2002년 대선 전 개혁당 시절부터 노 전 대통령을 흔드는 모든 세력에 맞서 온몸으로 싸워왔다. 그래서 그에겐 노 전 대통령의 '정치 경호실장'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영정 앞에 향을 피우지 않고 굳이 담배를 올린 그의 행동은 투신 자살하기 직전 경호원과 나눈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대화를 연상시킨다.

 

  
유시민 전 장관이 23일 조문을 하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놓고 있다. 사진은 '사람사는 세상' <[봉하영상2] 분향소 설치... 끊이지 않는 조문행렬> 화면 갈무리.
ⓒ 사람사는 세상
유시민

노 전 대통령은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지기 직전, 동행한 이병춘 경호과장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 과장은 "없습니다. 가져올까요"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됐다"고 말한 뒤, 얼마 후 이 과장의 시선을 따돌린 채 투신했다.

 

'정치 경호실장' 유 전 장관으로서는 마지막 가는 길에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싶었던, 그러나 그냥 갈 수밖에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이 못내 안타까웠던 것이다. 퇴임 후 담배를 끊었다던 노 전 대통령은 감내하기 힘겨울 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버릇처럼 담배를 찾았다. 최근에는 대검에 출두하기 직전 유 전 장관을 비롯한 참모들 앞에서 연거푸 두 대의 담배를 피웠고, 검찰청사에 들어가 조사를 받기 직전에도 담배부터 피웠다. 

 

노 전 대통령은 뒤늦게라도 유 전 장관이 바친 담배 한 모금의 연기로 가슴 깊은 곳에 쌓인 딱딱한 응어리들을 훌훌 날려 보낼 수 있을까?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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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두사람을 위해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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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노무현 입니다.
그래서 너무 좋았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그 이름이 믿음을 주었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당신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결국 당신은 승리를 했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힘없는 나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너무나 많은 기대를 품었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그래서인지 실망도 컸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다른이의 마지막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당신의 꿈대로 편안하게 살길 바랬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그런 당신을 사람들은 편안하게 놔두질 않았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당신이 흔들리지 않길 바랬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다시 일어나길 기대 했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다시 일어나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슬픈 마지막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이 이름이 그렇게 무거웠나요?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그래서 너무 슬픕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울음이 나려 합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스스로를 버리라고 하셨죠.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버릴 수 없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자신은 포기할 지라도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당신은 노무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당신은...노무현 입니다.
당신이 바로...노무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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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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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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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의 내용 일부가 공개 되었다.
10줄 정도의 짧은 유서라고 한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발표된 유서 내용...

그 동안 너무 힘들었다.

그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냐.

원망하지 마라.

화장을 해달라.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하나 세워달라.


이제는 힘들어 마시고 편안하게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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